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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부석사 구조의 신앙적 배경은 정토신앙인가 ‚ 화엄사상인가?
부석사의 독특한 구성 방법을 해석하는 견해는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정토신앙(淨土信仰)의 체계에 의거하여 아미타 불을 주존으로 삼고 ‚ 삼배구품(三輩九品)의 교리에 따라 전체 영역을 9개의 단으로 구성했다는 설이고 ‚ ?두 번째는 화 엄경 입법계품의 십지론을 근거로 10개의 단으로 구성했다는 설이다.

다수의 불교학자 및 김봉렬 등이 첫 번째 설을 ‚ 이원교   ·   배병선 등이 두 번째 설을 지지하고 있다. 정토신앙에 근거한 설은 부석사에 화엄 사상에 관계된 유물이 없고 ‚ 시기적으로도 화엄종이 체계를 잡기(9세기) 훨씬 전에 창건되었으므로 당시 일반화되었던 정토신앙을 근거로 삼았으리라는 시각이다. 석단도 회전문부터 무량수전까지 의 9개의 단을 회전문

터) – 범종각 – 안양루라는 결절점들에 의해 3 – 3 – 3의 구성으로 본다. 이것이 무량수경에서 말하 는 삼배구품설의 구조와 대응되며 ‚ 9품왕생의 최고 단계인 상품상생의 경우는 무량수전의 내부를 뜻한다. 내부에 들어가면 서쪽에 앉아 동쪽을 바라보는 아미타여래 를 만나게 되어 진정한 극락왕생의 염원을 이루게 되는 구조라는 것이다.

화엄사상에 입각한 설은 의상 조사가 직접 창건한 사찰로서 그가 펼쳤던 화엄 사상과 건축 공간 사이에 연관이 있을 거라는 주장이다. 우선 부석사가 위치한 태백산 주 변의 산 이름 – 도솔산 ‚ 비로봉 ‚ 연화봉 – 에서 화엄경의 이상향을 이르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또한 부석사의 전체 가람 구조는 화엄경의 34품 ‚ 8회 ‚ 10지의 각 단계 에 따라 공간들이 만들어져 있다고 본다. 그리고 부석사의 주불전은 무량수전으로 독존의 아미타여래를 동향으로 모시고 탑을 세우지 않았다. 화엄경 맨 마지막 장에 는 화엄경의 주인공인 보현보살이 비로자나불과 함께 아미타여래를 찬양하고 극락 세계에 귀의할 것을 기원하는 내용이 있다. 아미타여래는 서방의 극락세계를 관장 하고 있기 때문에 무량수전의 아미타여래를 서쪽에 모셔 동향하도록 하였음은 철저히 교리에 따른 것이라고 본다.

2. 부석사의 석단은 과연 몇 단인가?
이와 같이 정토신앙과 화엄사상 근거론의 쟁점은 부석사 전체를 이루고 있는 석단의 구성 문제에서 출발하고 있다. 현재의 천왕문부터 무량수전 기단까지의 석단의 수 는 보기에 따라 9단에서 12단까지 셈할 수 있다. 여기서 천왕문은 원래 일주문 터였던 것이 잘못 중건된 것이라고 지적되고 있다. 그러므로 천왕문이 위치한 석단은 제 외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가 되는 것은 회전문 터 앞의 좁은 석단을 셈하느냐 일종의 계단참으로 보고 제외하느냐에 따라 9단이냐 10단이냐가 결정 된다.

3. 부석사의 진입 과정중 안양루 아래부분과 윗부분의 축이 꺽여져 극적인 풍경을 이루고 있는 이유는?
천왕문 위부터 범종각까지의 축과 무량수전과 안양루를 연결하는 축은 30도 정도 어긋나 있다. 이에 대한 해석으로 범종루 밑에서 볼 때 안양루와 무량수전이 중첩되 는 장면을 극적으로 연출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견해가 있어왔으나 논리적이지는 못하다. 최근 최종현씨(우리공간 연구소)가 건물마다 고유한 안대(案帶:바라보는 산 또는 봉우리)를 가진다는 주장을 펴고 있는데 ‚ 이원교 씨의 논문에서 이 학설이 뒷받침되고 있다. 즉 범종각 위에서 보는 안대는 도솔봉이며 무량수전의 안대는 동쪽 으로 돌출된 작은 봉우리로 ‚ 무량수전과 그 안산으로 이루어지는 관계는 미타정토를 상징하며 ‚ 나머지 축과 도솔봉과의 관계는 미륵정토를 상징한다는 것이다.

4. 안양루 앞에는 대적광전이 있었다?
여기서 김봉렬 씨는 또다른 해석을 덧붙인다. 안양루 대석단 아래 ‚ 범종각과 직선상에 놓이는 곳에 비로자나불을 모시는 대적광전이 있지 않았나 하는 추론이다. ⟨ 순흥읍지 ⟩ 에는 안양루 아래 법당이 있다고 했고 ‚ 겸재 정선의 ‘   교남명승첩   ’ 에도 법당이 뚜렷이 그려져 있다고 하며 ‚ 법당 안에 놓이는 괘불대의 흔적도 남아있다. 그같 은 법당이 있었다면 부석사는 법당을 중심으로 삼는 아래절과 무량수전을 중심으로 하는 위절의 두 영역으로 구성된 복합적인 구조를 이루게 된다. 말하자면 ‚ 산문을 거쳐 장대한 계단과 누각 밑을 지나 정점에 오르면 법당에 이르러 일단 멈춘 흐름이 다시 뒤쪽의 안양루로 유도되어 무량수전에 다다르게 되는 ‚ 두 번의 클라이막스를 체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같이 전체를 두 영역으로 해석해 보면 ‚ 전체 석단이 다시 두 개의 대석단으로 구분되는 이유도 분명해진다. 평면적으로 굴절된 축과 함께 단면적으로 조성된 대석단이 아래 위 두 절을 입체적으로 중첩시키는 효과를 가져온다. 그러한 구성은 하나의 효과를 위해 자의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지형의 체계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 교리적 내용도 상징화하기 위해 설정된 것이라는 해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