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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불기 2552년 12월 3천배 기도안내
글쓴이 부석사 등록일 2008-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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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기 2552년 10월 부석사 삼천배 기도안내 ≪

* 일   시 : 12월 13일(토요일) 저녁 7시 00분 (매월 2째주 토요일)

 삼천배 기도는 무량수전에서 저녁예불(6시00분) 후에 7시부터 시작합니다.

     조금 늦게 도착하시는 경우에도 함께 하시고,

     기도시간내에 삼천배를 다 못하신 분은 개별적으로 회향하시면 됩니다.  

    ♡ 삼천배 하시는 분 기도 시작전 기념 촬영합니다 .

* 준 비 물 : 절하기 편한 복장, 세면도구, 땀을 닦을 수 있는 수건,

                좌복위에 땀뜰어짐 방지를 위한 큰 수건을 개별적으로 준비하시면...

                 휴식시간에 체온의 손실을 막을 수 있는 두터운 옷을 준비하세요.

* 주의사항 : 휴식시간에 가능한 한 고체(떡 등을)를 먹는 것을 절제하시고,

                  간단한 차나 따뜻한 음료, 당분정도를 섭취하면 체력을 보완할 수 있습니다.   

* 절하는 방법 : 2천배 까지는 500배 15분 휴식 2천배부터 400배 300배 300배 로                  

                    삼천배 책자 부처님의 명호와 함께 진행합니다.

                       청견스님의 절 지도참조: http://www.enlight.kr/bbs/zboard.php?☞  참조 :

                                     SBS스페셜 0.2 평  의 기적 절하는 사람들 :방송일 2007.4.8

                                     KBS 생로병사의 비밀 108 배 절 수행에 관하여 방송일 :2008.1.15

                        회향시각은 다음날 새벽 5:30

                        아침 예불에 이어서 삼천배를 회향한 후 휴식을 취하고 6:00시에 아침공양

 * 방사안내 : 거사님 방사가 부석사 공양간 불사 관계로 힘든 상황입니다
                    보살님 방사(50 명내외 )  


        
 * 공양안내 : 저녁공양은 오후 5:00


                    아침공양은  아침 6:00 - 7:00

 

 * 문의사항 : 종무소 054-633-3464


                   삼천배 지도 스님 무하 010-3628-3464


                11월 삼천배를 회양한 불자님들  축하 드립니다.

박미자 권용한 김형준 정호남 김미선 손희제 김민정 최영희 강덕원 김현정 김진영

김진영 이춘자 김무환 김희선 이치호 김정숙 손명순 김정순 김려은 김미순 이휘영

김동숙 이우철 권수진 정호정 정경모 전민기 전정기 김순복 정광민 정승일 김순복

정길성 한동숙 박영수 지현정 박효진 박경진 자비행 권맹옥 김강민 김정훈 권은영

인자성 김훈미 김영리 노화순 최명순 최승복 김혁동 김창현 윤향림 김덕년 심용택

김혜숙 심수희 심상수 신대권 신현아 석명균 이혜영 석경호 이기원 조영자 이순옥

박종숙 전명순 김갑석 김혜석 윤진열 허주영 신상희 문재옥 손정애 박태돌 배음덕

박준수 이정숙 최말덕 이삼용 박용운 박소영                                            이윤경

 

                        

                                       어떠한 삶이고 싶습니까

 

세월은 말입니다  무정하다 해도  서운해 하는 마음을 전해도 그냥 그대로입니다.

세월은 말입니다  새해라고 인정을 해 주어도 기뻐하거나 들떠하는 내색이 없습니다.

세월은 말입니다  지난해라 돌아보아 주지 않아도 서운해 하거나 원망하는 마음을 내지 않습니다.

세월이란 시간은 말입니다  아쉽지만 붙잡을수 없어 보내어야만 하고 때로는 우리에게 기쁨으로

슬픔으로 다가 오기도 했을테지만  실상 당신은 오고 감도 멈춤도 없었던 그냥 그대로입니다.

세월이란 그 무엇의 존재일까요 스님은 모르겠습니다.

시간이란 흐름의 관념으로 자리 하겠지만 ...   스님은 그냥 허공이라 하겠습니다.

우리 모두가 이르러야 할곳 말이지요   그냥 무심이라 함도 괜찮지 싶습니다.

모든이들 모든 존재를 안아주고 용서하는 허공같은 세월에 감사함을 전하면서

한 생각 열어 보려합니다.

 

오후엔 차일피일 미루다 지금에서야 겨울을 준비해봅니다.

봄 여름 가울...  당신의 소리도 당신의 색깔도 당신의 느낌도 본래 자리로 돌리고자 합니다.

한껏 봄 기운을 품었던 첫물차의 풋풋한 향과 쬐끄만 하지만 당찬 차 잎의 모양새도 그에 걸맏는

차의 탕색도 비워 졌습니다  입으로 머금었고 다시 대지로 되돌려 주었습니다.

지금껏 횟대에 걸어 두었던 모시옷도 가지런히 개어서 여름을 접었구요

가을이란 친구는 아직은 돌아가기 아쉬운듯 해서 아니 스님의 마음을 읽은듯 아쉬운척 해보입니다.

당신의 본 마음은 이미 뿌리로 회향 했음을 알지만 스님도 모른척 하고는 가을을 입고 있답니다.

이젠 누비도 꺼내어놓고 산으로 포행 나설 겨울 준비에 반나절이 훌쩍했습니다.

봄 부터 여름 가을과 더불어 겨울까지 시은이 깃들지 않은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렇게 시주의 은혜는 스님에게 두려움으로 경책으로 다가 옵니다.

점점 느껴지는 차가움은 온 몸으로 받는 경책입니다.

뒤늦은 겨울 맞이에 ...   온전히 겨울을 담기엔 지나친 욕심이었나 봅니다.

첫 겨울의 느낌은 담질 못했답니다.

다가오는 겨울을 맞이하고자 작지만 스님의 작은 그릇에서 봄도 여름도 가을도

이렇게 자리를 비어 주었습니다.

이렇게 당신들은 자신의 주인인 허공으로 돌아갔습니다.

봄은 허공으로 돌아가 당신의 자아(自我)가 없음을 보여 주었습니다.

여름도 허공과 하나 되었지만 당신 지금의 의지는 다음 가을과 겨울 봄 여름을 결정짓는 재생연결

의식으로 이어져 당신 현재의 쉼이 놓아짐이 끝이 아님을 보여 줍니다.

가을도 당신의 자리가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일러 주었습니다.

 

이렇게 봄은 우리들에게 스스로 내가 있다고 믿는 유신견(有信見)의 잘못된 견해를 깨우쳐 주었고

여름은 당신의 옷을 벗어버리면 그 순간 모든것이 끝난다는 단견(斷見)을 파(破)해 주었습니다.

가을은 자신의 여운 이랄까 영(靈)이 있어 육신의 기능이 다한 뒤에도 영원하다는 상견(常見)을

파(破)해 주기 위해 우리에게 다가 왔다 갔는지도 모릅니다.

내가 있다고 믿는 유신견도 죽어면 끝이라는 단견도 영이 있어 영원하다는 잘못된 견해도 자리를

비워 주었습니다.

이젠 겨울을 맞이하기만 하면 될듯 싶습니다.

스스로의 성품에 안기기만 하면 될듯 싶습니다.

허공의 주인인 스스로의 성품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될듯 싶습니다.

 

시주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저녁 기도 후에 차를 준비하고 허리를 곧게 세우고 반조하는 시간을

가져 봅니다.

넉넉하게 마신 차 탓일까요  새벽에 두어번 깨었답니다.

들어서면 나서야 하나봅니다.

갑자기 찬 공기를 가르며 따뜻한 물이 그것도 새벽녁에 하늘에서 쏟아지니 대지가 놀라서 한 소리

합니다.  미안 하기도 하고 쑥쓰럽기도 합니다.

달님도 별님도 이 광경을 죄다 보았거든요

별빛이 이렇게 초롱초롱할수가 없습니다

달빛 또한 스님의 알아차림을 느슨하게 합니다.

고요하고 깨끗함 그 무엇에 비할까요

모든이들이 잠든사이 이렇게 밤하늘은 우리들을 위해 성성하게 깨어있습니다.

우리들이 궁극에 이르기위해 가져야 할 느낌들이 이 새벽에 모두 있었습니다.

이 모든 광경들 담고 싶었지만 스님은 아직 비움으로의 알아차림이 부족합니다.

이렇게 고요하고 깨끗함과 초롱초롱한 아이 눈과같은 별빛과 어머님의 품과 같은 포근한 달빛을

아직은 담을 준비가 부족합니다.      이들의 주인은 허공이거든요

허공이기엔 스님의 애씀이 너무나 부족합니다.

 

별 친구에게 인사를 건내어 봅니다. 

별 친구는 말이 없습니다.

조금있다 하는 말입니다. 저를 아시나요 스님이 초면이라는 겁니다.

처음이 아닌데 하는 생각을 낼때쯤 자신은 이제 막 태어난 별이라는 겁니다.

아차 싶었습니다.  늘상 보는 별빛 달빛인줄 알았거든요

지금 막 태어났으니 이름좀 지어 달라는 부탁입니다.

새 별이라 지었구요  어떤 친구는 수능시험 쯤해서 태어났다나요

수능생들에게 지혜를 나누어 주기 위해서 태어났답니다.

그래서 지혜 별이라 지었구요

달이란 녀석은 매일매일 확연한 변화로 무상함을 보여줍니다.

이렇게 우리들 곁에선 모두가 잠든 사이에도 생하고 멸하는 이치와 무상함을 일러줍니다.

우리들에게 드리운 무명의 어두움을 거두어 주고자 ...

행여나 하는 염려에 이쪽 저쪽 자리를 옮겨 가면서 우리들의 조그만 어두움의 무명조차도 거두어

주고자 저녁부터 새벽까지 깨어 있음으로 애씀을 보여줍니다.

모든이들이 무명속에서 깨어나지 못할까 하는 염려 때문일까요

 

별님에게 물었습니다.

달님에게도 물어 봅니다.

왜 사는가요 하고 말입니다  대답인즉 질문같은 질문을 하라나요

당연히 잘 살기 위해서지요 그럼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건가요

봄같이 여름같이 가을같이 겨울같이 본래 자신의 모습으로 돌이킬줄 아는 삶이어야 한다나요

 

성서의 한 구절입니다.

지금의 내가 온전히 부정되어야만 성령으로 거듭나고 하나님이 역사함을 볼수있다 합니다.

이는 곧 지금의 나라고 생각되어지는 이 모든것들이 나 아님을 일러 주는 말씀이지 싶습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들은 나 아님의 자기식(識)으로 살아 가는

자신의 업력으로 살아가는 환자인지도 모릅니다.

부처님이나 성령으로 거듭난 예수님이나 성인의 지위에 오른 분들은 자기 본래의 정신을 회복한

분들입니다 우리들은 자기 본래의 정신을 회복하지 못한 환자인 샘이지요

물롬 자신의 본래 정신인 성품을 여의지는 않았지요

하지만 탐(貪)진(瞋)치(癡)의 작용을 따라가다보니 스스로의 성품과 가장 가까우면서도 멀기만

한 관계입니다.

신심명의 한 구절입니다

일심불생(一心不生)이면 만법무구( 萬法無咎)라 했습니다

한 생각도 나지 않으면 만법에 허물이 없다는 이야기 입니다.

한생각이 일어나지 않는것은 부처님과 아라한 이상의 지위여야 하기에 어렵습니다.

번뇌가 일어나더라도 한 생각 일어날때 알아차리면 깨어 있으면 양변이 생기지 않습니다.

그냥 일어나는 현상일 뿐이지요 일련의 현상에 분별심이 더해지지 않음이니까요

허물로 다가오지 않는 샘이지요

 

 위 말씀으로의 실천이 화두 또는 알아차림이지 싶습니다.

느낌이나 생각은 멈출줄을 모릅니다  찰나에도 말이지요

알아차림하는 찰나는 느낌이 일어나고 사라짐을  생각이 일어나고 사라짐을 볼수 있습니다

실천의 의미가 생각을 하고 그 생각을 행위로 옮겨서 결과를 산출하는 다시 환원해서 또 

다시 출발하는 의미일수도 있겠지만 여기에서의 실천의 의미는 적어도 알아차림 가운데

깨어있는 가운데 행위되어지는 의미이고 더 나아가서는 일어나고 살아지는 것을 아는 그

마음으로의 반조 알아차림이지 싶습니다.

이러한 실천의 노력이 어느정도 갖추어져서 그 힘이 각자의 업력과 대등하거나 각자의 

업력을 능가했을때 우리들의 삶은 잘 살아지는 행복해지는 삶이 되겠지요

이러한 알아차림으로의 애씀에 끝없이 도전해 오는 번뇌중에서 탐내는 마음 화내는 마음

어리석은 마음이 우리들 가장 가까이 있는 강력한 적이라 할수 있습니다.

알아차리고 또 알아차려서 이러한 적과 섞이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적들과 섞이게 된다면 자신이 자신의 적이 되어 버리는 격이 될지도 모르니까요

멀리 있는 적은 가끔씩 이유가 있을때만 나를 괴롭힐수 있고 고통을 줄수 있습니다.

멀리 있으면서 일부러 와서 괴롭히지는 않을테니까요

가장 가까이 있는 탐심 진심 치심의 적은 우리들을 다음생에도 또 다음생에도 고통에 이르

도록 괴롭일지도 모릅니다

이들의 사라짐을 볼수 있는 알아차림이란 확실한 무기가 있기에 그래도 안심입니다.

 

목 마르기를 기다려 샘을 파는 어리석음 보다는  모름지기 미리 우물을 파 놓았다가 목 마를때

갈증을 해소하는 지혜가 필요한 때입니다 .   지금 말입니다.

탐(貪)진(嗔)치(癡)로 포장되어지는 삶 보다는

알아차림의 노력으로 이 삼독을 벗어버리는 아름다운 삶이고 싶지 않습니까

 

자 시선과 생각을 코 끝쪽으로 가져옵니다

자 시선과 생각을 가슴으로 가져옵니다

자 시선과 생각을 배로 가져옵니다.

선택한 각각의 위치에서 들숨 날숨을 알아차립니다

고요합니다.   지혜롭습니다.  잘 사는 길입니다.

 

지난 13일에 수능이 치루어졌습니다.

스님과 더불어 수험생을 둔 학부모님 께선 법당에선 아침부터 저녁까지 자리를 뜨지 않고

간절한 기도를 올렸습니다.

자녀들의 실력이 장애없이 발휘될수 있도록 말입니다.

결과에 만족하거나 만족하지 못해 아쉬워 하는것 보다는 수험생은 수험생대로 학부모님은

학부모님대로 최선을 다했음에 그 의미를 두고 바라보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수험생은 노력했던 만큼 또 학부모님의 간절했던 기도는 시절 인연을 따라 인(因)이 되어

과(果)로 돌아오게 될테니까요

만족이란 것도 어찌보면 탐심(貪心)이지 싶습니다.

만족하지 못하는 것도 어찌보면 진심(嗔心)이지 싶습니다.

그저 알아차림으로 바라보는것이 최선인듯 싶습니다.

달마 관심론에서도 관심일법(觀心一法)이 총섭제행(總攝諸行)이요

명위성요(名爲成要)라 했습니다.

마음을 관 하는 하나의 법이 모든행을 포함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니 알아차림으로 바라보는것도  참 좋을듯 싶습니다.

 

                      무 하          합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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