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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Ⅰ   ⟩
신라華嚴學의 大家이었던 義湘이 國內外 사정을 豫知한 나머지 唐나라 유학으로부터 서둘러 귀국하는 한편 당시 文武大王을 도와 국내의 제반 여건을 사상적으로도 통일시켰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대체로 국방상 취약지구에 사찰을 건립하여 그 지역의 遺民들을 懷柔 내지 敎化해 왔음은 종종 있는 일이었고 이같은 일은 삼국통 일 이후 王命에 의해 義湘 자신이 직접 건립한 浮石寺가 그 대표적 사찰이라 하겠다. 그리고 이곳에서 살피게 되는 毘摩羅寺 역시 義湘傳敎 華嚴十刹 가운데 속하는 사찰로서 신라 국방상 중요한 위치에 건립되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이들 華嚴十刹에 대해서는 일찍부터 一然에 의해 ⟨ 삼국유사 ⟩ 에 기록되어 있으나 이들 가운데 原州 지역에 건립되었던 소위 ⌈ 毘摩羅寺 ⌋ 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해명을 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대체로 이들 10대 사찰은 단연 신라의 사상과 예술을 대표하는 국내의 유수한 사찰임은 말할 것도 없고 또한 신라의 지리적 또는 국방적으로도 중요한 위치에 건립되었다고 추정되는 점에서 이들 寺址에 대한 해명은 그 의의가 자못 크다 고 할 것이다. 그러나 유독 원주의 비마라사는 종내까지 기록상으로만 알려졌을 뿐 그 소재를 알지 못했다. ⟨ 삼국유사 ⟩ 에 열거한 순서로 봐서는 단연 浮石寺에 다음가 는 중요한 사찰이지만 아직까지 구체적인 寺觀이나 그 規摸에 대해서도 전혀 알 수 없는 실정이었다. 따라서 이와같은 원주 비마라사지에 대한 해명은 신라 불교의 內 實뿐만 아니라 오늘날 원주지역의 특수성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도 매우 바람직한 일이라 할 것이다.

東國思想
그간 필자는 1974년도 원주지역의 佛蹟조사에서 한 寺址를 발견하여 이가 바로 義湘의 華嚴大敎가 전파되던 비마라사지임을 단정 한 바 있고 ‚ 또 學界의 관심을 모 아 本校 黃壽永博物館長의 인솔하에 寺址를 再調査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寺址에 대해서는 절이 지닌 역사적 배경에 비해 볼 때 아직 별다른 보호조치를 받고 있지 못 한 실정이다. 따라서 필자는 寺址 발견 이후 보다 더 증빙이 될만한 物的資料 내지 문헌기록의 발견을 기다렸으나 아직까지 별다른 진전이 없고 寺址가 더욱 일실될 우 려가 있어 이제 그간의 조사내용을 정리하여 이곳에 소개할까 한다. 그러므로 本考에서는 寺址의 究明과 現狀 ‚ 그리고 現存하는 遺物 ?및 관계 문헌을 중심으로 고찰 될 수 있을 것이다.

⟨   Ⅱ   ⟩
일찍부터 原州는 신라의 小京으로서 北原京이었다. 본래는 고구려 平原郡이었으나 文武大王이 小京을 설치한 이후 神文王 5년(685년)에는 성을 쌓았는데 둘레가 1031步였다고 한다. 따라서 원주는 삼국 이래 지리적 또는 국방상으로도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므로 이와같은 곳에 신라의 중요한 사찰이 건립될 수 있었던 것은 충분히 이해되는 바이다. 먼저 비마라사지에 대하여는 文獻資料上에 의하여 ‚ 또는 현지 地表上에 나타난 遺蹟   ·   遺物에 의하여 고찰될 수 있을 것이다. 대체로 이들 華嚴十刹을 열거함에 있어서는 기록에 따라 다소의 차이가 있으나 역시 ⟨ 삼국유사 ⟨ 의 내용을 따르기로 하겠다. 이 기록에 의하면 이들 十刹은 太 白山 浮石寺   ·   原州 毘摩羅   ·   伽耶山 海印寺   ·   毘瑟山 玉泉寺   ·   金井山 梵魚寺   ·   智異山 華嚴寺등으로서 대부분 국내의 유수한 大刹임을 알 수 있다. 즉 이들 가운데 浮石寺를 위시하여 대부분의 사찰들은 오늘날까지 法燈을 이어오고 있는 국내 굴지의 사찰들이다. 그런데 이중에서도 浮石寺는 직접 王命에 의해 義湘 당시에 건립된 사찰임을 감안할 때 一然에 의해 지적된 비미라사가 浮石寺 바로 다음에 기록되고 있는 것도 이 사찰의 寺格을 단적으로 짐작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寺名 毘摩羅 역시 梵名에 서 온 것이라고 본다면 석가여래의 在俗上首弟子 維摩居士와도 연관이 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또 우리나라에 있어서 維摩居士에 대한 신앙이 일찍부터 있었던 것으로 본다면 義湘의 十刹에 그와같은 명칭으로써 寺名을 삼았던 것도 그렇게 어려웠던 일은 아닐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이곳에서 한가지 주목되는 것은 浮石寺를 위시하여 이들 十刹을 열거함에 있어서 毘摩羅寺를 제외한 나머지 사찰들은 모두 절의 위치를 소속 山名으로써 나타 내고 있으나 유독 비마라사만은 原州라는 특수한 地名을 나타내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이들 十刹을 나타내는 다른 기록에서도 절의 위치를 地名으로써 표시한 곳도 없지는 않으나 일단 이곳에서는 論外로 한다. 따라서 비마라사의 위치는 다른 사찰에서와 같은 山地伽藍이 아니고 原州와 같은 盆地 또는 平地에 위치할 가능성이 짙 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원주지역은 옛부터 雉岳山과 같은 鎭山이 있었으므로 만일 비마라사가 산지가람이었다면 틀림없이 雉岳山과 같은 山名으로써 그 위치를 표 시했을 것이 확실시되기 때문이다. 이와같은 寺名이나 寺址의 存在를 현재의 雉岳山에서 발견할 수 없는 한 ‚ 이제 原州와 至近한 거리에 있는 平地로써 그 가람의 위치 에 대한 트집을 잡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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