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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불기 2553년 4월 삼천배 기도안내
글쓴이 부석사 등록일 2009-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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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기 2553년 4월 부석사 삼천배 기도안내 ≪

4월 삼천배를 마지막으로 회향 합니다.

* 일   시 : 4월 11일(토요일) 저녁 8시 00분

 삼천배 기도는 무량수전에서 저녁예불(6시30분) 후에 8시부터 시작합니다.

     조금 늦게 도착하시는 경우에도 함께 하시고,

     기도시간 내에 삼천배를 다 못하신 분은 개별적으로 회향하시면 됩니다.  

    ♡ 삼천배 하시는 분 기도 시작전 기념 촬영합니다 .

* 준 비 물 : 절하기 편한 복장, 세면도구, 땀을 닦을 수 있는 수건,

                좌복위에 땀 떨어짐 방지를 위한 큰 수건을 개별적으로 준비하시면...

                 휴식시간에 체온의 손실을 막을 수 있는 두터운 옷을 준비하세요.

* 주의사항 : 휴식시간에 가능한 한 고체(떡 등을)를 먹는 것을 절제하시고, 

                  간단한 차나 따뜻한 음료, 당분 정도를 섭취하면 체력을 보완할 수 있습니다.   

* 절하는 방법 : 2천배 까지는 500배 15분 휴식 2천배부터 400배 300배 300배 로                  

                    삼천배 책자 부처님의 명호와 함께 진행합니다.

                       청견스님의 절 지도참조: http://www.enlight.kr/bbs/zboard.php?☞  참조 :

                                     SBS스페셜 0.2 평  의 기적 절하는 사람들 :방송일 2007.4.8

                                     KBS 생로병사의 비밀 108 배 절 수행에 관하여 방송일 :2008.1.15

                        회향시각은 다음날 새벽 5:30

                        아침 예불에 이어서 삼천배를 회향한 후 휴식을 취하고 6:00시에 아침공양

 * 방사안내 : 거사님 방사가 부석사 공양간 불사 관계로 힘든 상황입니다
                    보살님 방사(50 명내외 )  


        
 * 공양안내 : 저녁공양은 오후 5:30


                    아침공양은  아침 6:00 - 7:00

 

 * 문의사항 : 종무소 054-633-3464


                   삼천배 지도 스님 무하 010-3628-3464


            불기 2553년 3월 삼천배를 회향한 불자님들 성불 하세요

최인영 정길성 김순복 김미순 진여성 심석규 김현우 김강민 김정훈 권맹옥 권 일

권보라 이동석 이지연 심용택 김헤숙 심수희 심상수 최희열 이상이 최완규 빅태돌

박준수 배음덕 이정숙 이삼용 박용운 최말덕 박소영 최영숙 김경식 김헤숙 이춘자

김태완 김진영 김현정 김석준 신현아 신진아 박순자 이혜영 이보연

 

                                 삼천배를   회향 하면서

 

아득히 멀진 않지만 조금의 시간을 거슬러, 부석사 도량에 가득한 회양목 향기 위에

옛 기억 한 자락을 슬쩍  떠올려 봅니다.

어떤 처사 한 사람이 남쪽에서 발검음을 재촉해 봅니다.

대구를 거쳐 영주 부석에 도착했습니다. 부석사의 매표소에서 부석사를 오른손에 쥔 채 일주문을

향합니다.  일주문도 천왕문도 가엾게 여겼던지 처사를 허락해 주었습니다.

조그만 배낭을 어깨에 메고는 부석사 도량에 안기려 했던 처사.

어느 한 곳에서도 생기를 찾아볼 수 없었답니다.

총기 없는 눈이며 부석부석 생기 없는 몸 삐쩍 말라 덕이 없어보이는 폼세 누구하나 관심을 줄 여지

조차 없는 이 처사를 도량이 기꺼이 허락해 주었고 은사이신 지금의 조실스님께서 거두어 주셨으며

지금의 사형 스님들께서도 내키지 않는 이 처사의 머리를 기꺼이 깎아 주었답니다.

이렇게 삭발을 하고 먹물옷을 입고 지금은 스님이라 불리어지고 있습니다.

저에겐 아직도 어울리지 않는 호칭입니다.

불.법.승 삼보에서 승이라 함은 청정함의 의미이지 싶습니다.

아직은 이렇게 불리어지기엔 내려 놓음이 턱없이 부족한 듯 합니다.

삭발을 해 온 지가 몇백 번도 더 되었음직한데 이렇게 자르고 잘라 보지만 어느 새 자라서는...

'나'라는 생각의 녀석은 고개를 치켜 세우곤 합니다.

불.법.승 삼보가 어찌 머리의 모양새와 먹물옷에 있다 하겠습니까 . 좌복 위에 한하는 것도 아닐테

요. 그건 이미 우리들 모두의 마음속에 온전하게 자리하고 있으니까요

 

스님의 먹물옷 속 깊이 감추어진 '나'라는 생각의 녀석은 모든 허물의 근원입니다. 참으로 무서운

재입니다. 스님의 머리 모양새 속에 감추어진 '나'라는 녀석 스님의 미소속에 감추어진 '나'라

생각의 녀석은 지칠 줄도 모릅니다.  환절기도 없나 봅니다.

하지만 이 녀석에게는 가히 천적이라 할 수 있는 '이 뭣고?' 가  있고 알아차림이 있습니다.

녀석을 내려놓을 수 있고 녀석의 공(空)함을 확인 할 수 있는 부처님의 가르침 선사들의 가르침이

있습니다.  다행 중 다행이지요.

이러한 가르침을 여여하게 보여주는 친구는 또.....

부석사 범종루와 삼층석탑 사이에 있는 산수유 친구이지요. 

부석사와 인연하는 많은 이들에게 그 행을 보여줍니다.

지난 해에 머리를 단정히 잘라 주었던 녀석입니다. 내 생에 스님이 되고 싶다기에 말입니다.

얼마 전 노란 꽃망울이 톡톡 하고 허공을 가르는 소리를 냅니다.

녀석은 고개를 살짝 내밀어 이쪽 저쪽을 살핍니다. 무엇이 그렇게 조심스러운 걸까요.

햇살의 따스함이 어느 정도인지 살피는 것 같기도 하고, 습도를 느껴 보는 것 같기도 하고요.

자신이 나와야 할 때인지를 세심하게 살피는 듯 합니다.

스님이 살짝 일러 주었지요. 나와도 되는데... 하고 말입니다.

당신이 나와야 햇살도 따스해야 할 의무를 다하는 것이며 햇살의 권리를 행하게 된다고 일러 주었

지요.

당신이 나온다면 모두들 그 의무를 다해 기꺼이 환영해 줄거라구요.

당신이 나온다면 우리 모두의 마음속 봄의 에너지와 향기를 불어 넣어주고 입혀줄거라구요.

녀석이 지난 겨울에도 차가운 땅 속에서 얼지않고 깨어 있었던 것은 그 추운 겨울 삼천배 불자님

들의 삼천 부처님의 명호를 외치는 소리 때문이라 합니다.

차마 겨울잠을 청할 수 없어 내내 깨어 있었다 합니다.

이제 고개를 내밀어 삼천배 불자님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봄이라는 친구는 땅 속에서 우리들 마음속에서 이렇게 만들어졌을까요

 

이제 막 자신의 모습을 펼치면서 그 모습을 펼칠 수 있게 한 신선한 공간에 감사함을 전하고,

자신을 온전하게 겨울을 나게 한 대지에 감사함을 전하고, 자신을 보아줄 삼천배 불자님과 더불어

보아주는 모든 이에게 감사함을 전하려 하는 찰나에 심술을 부리는 것일까요, 아님 녀석의 여여함

을 시험함일까요.  갑자기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고 밤새 눈이 내리기도 합니다.

녀석에게 그 의미를 부여하기에 참 난감합니다. 스님을 난감하게 하는 변화들이지요.

스님이 나와도 된다고 일러주었는데도 저를 원망하지 않음은 녀석의 정진력 때문인 듯 합니다.

산수유 친구는 이러한 변화에 다만 이 뭣고 한 듯 합니다. 

산수유 친구에게 다가온 이러한 변화는 다만 알아차려야 할 대상으로 느낌으로 여겨졌나 봅니다.

그러기에 원망할 이유가 없었겠지요. 오히려 공부가 더 성숙해졌던 계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제는 우리 모두가 봄이라 합니다.

봄이란 친구에게 슬쩍 물어 보았지요. 당신은 언제부터 있었던가요 하고 말입니다.

친구가 속삭여 오길 당신은 단군 환웅 환인 할아버지 이전의 아득히 먼 옛날부터 있었고 지금도

이렇게 불자님들과 함께 하고 있다 합니다.

봄의 소리를 접하면서 기억되는 성서 한 구절 보려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사도바울 베드로 등의 열두 사도제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합니다.

나는 지금도 있고 아브라함 이전에도 있었다 합니다.

예수님의 많은 말씀이 사도바울에 의해 기록되어 지고 ... 이를 신약이라 하지 싶습니다.

아브라함은 예수님께서 세상에 태어날 꿈도 꾸지 못했던 아득히 먼 구약 시대의 한 분입니다.

봄이란 친구와 예수님께서 말한 '나'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태어남도 멸함도 없는 우리들의 성품이지 싶습니다.

지금 절대 현재에 '나 '라고 하는 아주 무서운 친구와 함께 하는 성품이요 성령이지 싶습니다.

눈으로 보고 그 향기를 취하고 그 소리를 듣는것 진정 봄을 맞이하는 걸까요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입니다.  이러한 것은 다만 이 뭣고 해야 하는, 다만 알아차리는...

알아차림의 대상으로 다가와야 되지 싶습니다.

이렇게 실천이 성숙되어질 때 우리에게 진정한 봄은 다가오지 싶습니다.

에수님이 말한 나 라는 실체가 드러나지 싶습니다.

부처님께서도 모든 잘못 가운데 가장 나쁘고 해로운 것은 그릇된 견해이다 라고 하셨습니다.

그릇된 견해는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이라는 오온(五蘊)을 실재하는 자아, 나 혹은 자신이라고

하는 유신견에서부터 생겨난다고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오온을 실재하는 것으로 여기거나 자아 영혼 자신 또는 나라고 생각할 때마다 그릇된

견해가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유신견은 우리들의 존재를 행복한 세계로 인도하지 못하고

비참한 세계 사악도로 끌어 내린다 합니다.

완두콩 크기만한 자갈돌이라도 결코 물 위에 뜰 수 없듯이 유신견을 가진 존재는 윤회의 표면으로

결코 떠오를 수 없겠지요  이러한 유신견이 모든 그릇된 견해의 번식지이자 출생지이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마치 머리카락에 불이 붙은 것과 같이 가슴이 창에 찔린 것 같이 우리

모두는 유신견을 제거하기 위해  알아차리는  수행에 힘써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와 같은 말씀은 성서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지금의 내가 온전히 부정되어야 하나님이 역사하고 셩령으로 거듭날 수 있다 했습니

다.  선사들의 말씀에서도 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

작년 가난은 가난해서 송곳 꽂을 땅도 없더니, 금년 가난은 가난해서 송곳마저도 없다 했습니다.

지금의 내가 온전히 부정되어 지는 것 송곳마저 없어지는 것 이는 곧 오온을 나 라고 여기는 그릇된

견해에서 벗어나라고 일러주는 말씀이지 싶습니다.

오온이 본래 공함을 체득한 나 마저 없음을 이야기함이지 싶습니다.

수행 중에 우리들에게 다가오는 그 어떤 현상도 그것을 경계로 여기지 말고 다만 화두로 다만 알아

차림으로 되돌려야 하지 싶습니다.

기도 중에 다가오는 그러한 것이 경계로 여겨진다면 이는 경계로 여긴 내가 있게 되어 유신견의 그

된 견해에서 벗어나지 못함이지 싶습니다. 나 라는 뿌리는 더욱 깊어지지 싶습니다.

부처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아라한이 아라한이라고 하면 이미 그는 아라한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거기에도 나 라는 유신견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알아차리면 되지 싶습니다.

우리들이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때로는 기쁨이 다가오기도 때로는 슬픔이 다가오기도 하겠지만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기뻐함에도 기뻐하는 내가 있고, 슬퍼함에도 슬퍼하는 내가 있기에 나의 뿌리

는 깊어질 수 있습니다. 다만 알아차림에 힘을 쏟아야 하지 싶습니다.

웬만한 불자라면 반야심경 정도는 암기하고 예불을 드릴 때면 중단을 향해 송 하곤 합니다.

하루에도 몇 번이고 오온개공(五蘊皆空) 하면서도 오온에 그만 나 가 착 달라 붙어버립니다.

스님 스스로도 예외는 아니지요 스님도 절을 하면서 때때로 애를 많이 써봅니다.

근기가 하열한지라 노력밖에는 별 다른 방법이 없으니까요.

오온개공(五蘊皆空)을 짚어주는 선시 하나 기억 됩니다.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서산대사로 알려진 청허스님의 선시 입니다.

 

오온으로 집 삼으니   비바람 얼마련고

흰 구름이 오가지만   이 집 주인을 알지 못하네

 

삼천배를 회향하면서 그릇된 견해들도 알아차림의 화로에 화두라는 화로에 함께 회향했으면

하는 바람에서 두서없이 옮겨 보았습니다.

부석사 홈페이지에 그래도 읽을 거리가 된다기에 온전한 스님의 소리는 못되지만 이양이면 ...

하는 뜻으로 이어왔습니다 .  스님의 큰 허물이겠지만 불자님들의 이해가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때론 가르치려 하는 생각들을 가질 수 있겠다 싶습니다.

스님도 이러한 생각들이 저 자신을 지배하는 때가 종종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가르치려 하는 것, 어찌 보면 다른 이들에게 인정받기 위함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른 이들이 인정해 준다 해서 스님 스스로가 그만큼 성숙해 지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대승 불교의 큰 뜻이 상구보리 하화중생 하는 보살 사상에 있다 할 수 있지만 조심스레 새겨야 할

뜻인듯 합니다. 위로는 보리를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제도 한다는 것 말입니다.

 

법구경에 의하면 부처님의 제자 가운데 가장 뛰어난 지혜를 가졌다고 하는 사리불 존자가 부처님

이 계시지만 부정관을 통해서 제자들을 지도하고 있는 중에 시간이 꽤 흘렀음에도 진전이 없어 자

신이 잘못 지도하고 있음을 깨닫고 부처님께 말씀드려 깨닫게 해 주었다 합니다.

사리불 존자가 이정도라면 어느 누가 감히 다른 이들을 제대로 지도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인가 ,

하는 생각 우리 모두에게 다가오는 경책이겠지요.

청허 스님의 선시 하나 옮기면서 접을까 합니다.

 

온갖 계획  모든 생각         붉은 화로에 한 송이 눈일세

진흙소가  물 위로 가니      하늘 땅이 한꺼번에 갈라지네

 

삼천배를 시작한 것이 불기 2550년 4월이라 기억 됩니다

이번 4월이면 꼭 3년째가 됩니다.

이전 무량수전 기도 소임자 스님께서 시작하셨지요.  감사드립니다.

지금까지 웃음을 잃지 않고 기념 사진을 찍어 주셨던 시자스님께도 감사드립니다.

저와 더불어 함께 하셨던 모든 삼천배 불자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힘든 고비마다 댓글로 저에게 용기를 주셨던 dawn님 성오대성 대경진여 국화향기 신록예찬 가령

개똥벌레 대도심 임진태 유리창 유영래 거울속의나 윤경 이광호 여래성 담연성 못난이 헌나도

바람소리 홍신 진솔 눈바람 rull 임정화 자연이 들꽃항기 보월화 현주 연화향 파엘 수인행 명법화

수정 브랜드강 여여심 컬럼비아 토 둥근네모 지승 구영숙 보현행 이 모든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무   하                  합   장

 

     

      삼천배 회향 공양물로 준비 했습니다. 회향에 동참하셔서 받아 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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