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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불기 2553년 3월 3천배 기도 안내
글쓴이 부석사 등록일 2009-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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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기 2553년 3월 부석사 삼천배 기도안내 ≪

* 일   시 : 3월 14일(토요일) 저녁 7시 00분 (매월 2째주 토요일)

 삼천배 기도는 무량수전에서 저녁예불(6시00분) 후에 7시부터 시작합니다.

     조금 늦게 도착하시는 경우에도 함께 하시고,

     기도시간 내에 삼천배를 다 못하신 분은 개별적으로 회향하시면 됩니다.  

    ♡ 삼천배 하시는 분 기도 시작전 기념 촬영합니다 .

* 준 비 물 : 절하기 편한 복장, 세면도구, 땀을 닦을 수 있는 수건,

                좌복위에 땀 떨어짐 방지를 위한 큰 수건을 개별적으로 준비하시면...

                 휴식시간에 체온의 손실을 막을 수 있는 두터운 옷을 준비하세요.

* 주의사항 : 휴식시간에 가능한 한 고체(떡 등을)를 먹는 것을 절제하시고, 

                  간단한 차나 따뜻한 음료, 당분 정도를 섭취하면 체력을 보완할 수 있습니다.   

* 절하는 방법 : 2천배 까지는 500배 15분 휴식 2천배부터 400배 300배 300배 로                  

                    삼천배 책자 부처님의 명호와 함께 진행합니다.

                       청견스님의 절 지도참조: http://www.enlight.kr/bbs/zboard.php?☞  참조 :

                                     SBS스페셜 0.2 평  의 기적 절하는 사람들 :방송일 2007.4.8

                                     KBS 생로병사의 비밀 108 배 절 수행에 관하여 방송일 :2008.1.15

                        회향시각은 다음날 새벽 5:30

                        아침 예불에 이어서 삼천배를 회향한 후 휴식을 취하고 6:00시에 아침공양

 * 방사안내 : 거사님 방사가 부석사 공양간 불사 관계로 힘든 상황입니다
                    보살님 방사(50 명내외 )  


        
 * 공양안내 : 저녁공양은 오후 5:00


                    아침공양은  아침 6:00 - 7:00

 

 * 문의사항 : 종무소 054-633-3464


                   삼천배 지도 스님 무하 010-3628-3464

 

 

 

                            2월 삼천배를 회향한 불자님들 성불 하세요

김주영 안찬희 백명자 진여성 조승래 김경희 조연지 조현일 최휘연 이상이 최완규

신대권 신현아 신진아 이상분 정현호 정연실 이은실 정현주 이구택 이동석 이지연

박태돌 배음덕 박준수 이삼용 최말덕 이정숙 박용운 박소영 박재분 이기훈 김갑석

김혜석 김주현 김주영 정해선 황경자 최형락 이치호 손명순 주승만 최일락 박대우

서천석 박찬용 문준영 김동숙 서청원 서지영 장순남 서지영 안현선 김종우 김석규

김진영 김현정 이춘자 김락균 정길성 김순복 김강민 금보원 김정훈 권맹옥 황소섭

황재양 황재탁 김여훈 박복순 김경이 김민정 김미선 손희제 손만식 손경미 손여의주

정호남 심용택 김혜숙 심수희 심상수 김미순 최명순 최승복 안정심 김경식 김혜숙

 

 

                                          졸업 참으로 축하 할 일입니다

 

오늘 초하루엔 신도님들께서 무량수전 법당을 가득 메웠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귀의하는 입학식장을 연상하는 듯 합니다.

스님이 신도님들을 기다려야 하지만 10여분 지각을 한터라 신도님들께서 스님을 기다리는

상황 ...   종종 있는 스님의 허물입니다.

초하루엔 상단 예불후 신중단으로의 중단권공이 있습니다.

중단권공 의식중 화엄성중 정근은 부석사가 화엄도량임을 신도님들 서로에게 확인시켜주는

시간인듯 합니다.

한달에 한번 있는 권공 의식이지만 그나마 행사가 있거나 재사가 있는 날엔 거르게 되어 두달 혹은

석달에 한번 있는 의식이라 스님의 기억 속에서 출력하느라 당황할때가 있습니다.

지금이 그러한지라 상단 예불전 관음정근중에 신도님들 모르게 스님의 기억속 창을 열기 

시작합니다. 마우스로 이쪽 저쪽 옮겨봅니다.  고정되었던 눈동자가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관음정근과 더불어 중단권공 의식을 살짝 살짝 열어보고는 안심입니다.

여여한 스님의 표정 아무도 모르겠지요 앞에 계신 부처님과 신장님들은 알겠지만요

이렇게 중단에 축원까지 하게되면 사시 예불 의식이 모두 끝납니다.

서로에게 성불 하세요 하고는 웃음으로 인사를 나누면 스님의 지각쯤은 불자님들의 기억 속에 저장

되지 않습니다.   이는 화내는 마음의 졸업입니다.

부석사 불자님들의 기도의 힘 기도의 향기입니다

공양 따뜻하게 많이 드시고 가시라고 덧붙이는 스님의 한마디...

부석사의 불자님들 사시 공양에 있어서도 결코 많이도 적게도 아닌 적당하게...

탐내는 마음도 이미 졸업한듯 합니다.

 

부석사의 초하루는 그믐날 초저녁 부터 철야 기도로 밤을 지키는 부석사의 고참 보살님들 화엄회

보살님들의 준비가 있었기에 풍성합니다.

부석사와 인연한지 30년 혹은 40년을 훌쩍한 고참 중에 고참 보살님들이지요

화엄성중 기도를 좋아 하십니다.

보이지 않게 부석사를 지탱하는 배흘림 기둥이지요

그 밑으로 이제 막 부처님의 가르침이 몸으로 베어드는 듯한 원숙미를 보여 주는 선지회가 있구요

부석사의 크고 작은 일들을 책임지는 훌륭한 분들입니다.

이제 막 입학한 신입생격인 바라밀회 부석사에 생기를 불어넣는 신도회 입니다.

초하루엔 이렇게 모든 불자님들이 한자리에 합니다.   참 좋은 모습들입니다

참 졸업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있는 화엄회 불자님들...

언젠가 스님이 두어번 철야기도를 함께 했었던 기억입니다.

상단에 떡 올리고 농사지은 과일 제일 먼저 부처님전에 올리고 이렇게 기도를 시작합니다.

밤이 깊어지면 올렸던 공양물로 간소한 먹거리 풍경을 펼쳐 보입니다.

스님 이제 좀 쉬세요 내일 새벽 기도도 있고 하는데 하고 운을 띄워옵니다.

시장기를 달랠 시간을 좀 달라는 이야기입니다.  마지막엔 커피를 즐기는 운치도 더합니다.

깊은 밤이지만 노보살님들의 염불 소리가 있고 먹거리가 있고 커피향까지 있어...

법당에 계신 부처님도 흐뭇해 하시는 눈치입니다.

 

화엄회 구참 불자님들 졸기도 하면서 때로는 커피의 힘으로 자식들을 위한 바램의 힘으로

그 추운 겨울에 난로도 없이 당신들 온 몸으로 어두움을 머금어갑니다.

어두움의 흔적 조차도 남기지 않습니다.  행여나 자식들에게 해가 될까 염려해서 이겠지요

이렇게 노보살님을의 자식을 향한 일념에 밤이란 친구도 밖에서 들려오는 거센 바람소리도

고개를 숙이고는 불자님들의 진정한 졸업을 기원하는 듯 합니다.

그러기에 후배 선지회 불자님들이 있고 더불어 이제 막 입학한 바라밀회 불자님들도 있지 않나

생각 됩니다.   스님도 항상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이 모두가 스님에겐 경책으로 다가오는

대중의 힘입니다.

부석사를 다녀가는 여러 인연의 사람들과 조금은 다른 부석사의 아름다운 향기입니다

부석사를 다녀가는 많은 사람들이 국보여 보물이며 배흘림이며 많은 지식들을 자신들의 기억속에

담아가서 가족들 친구들에게 열어주는 포교의 역할도 하겠지만...

우리 부석사의 아름다운 향기도 함께 담아 인연되는 많은 사람들에게 전했으면 하는 소박한 바램

스님의 몫인듯 합니다.

 

이번 겨울엔 봉황선원 지대방 공사 관계로 결제를 하지 않아 산으로 포행하는이가 거의 혼자

입니다. 선원 바로아래 길엔 겨울 내내 꿩들이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삼삼 오오 무리를 이루어

수좌 스님들의 빈 자리를 대신합니다.

서로 다른 이성들끼 사귀는것도 같고 어떨땐 동료들끼리 한꺼번에 날아 오르기도 합니다.

따스한 햇살을 즐기는 허공 친구의 단잠 삼매를 깨우기도 합니다.

스님을 놀래키기도 하는 녀석들입니다.

참 좋은 꿈을 꾸고 있었던 허공을 깨우긴 했지만 허공 친구는 녀석들에게 화내는 기색이 전혀

없는 듯 합니다.  그냥 모른척 하는 것일까요

고개를 아래로 한채 애씀의 걸음을 옮기고 있습니다.

시선을 살짝 위로 할때쯤 수컷 꿩 한 녀석이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다말고 스님을 본 모양입니다.

스님을 무시 하는듯 여유만만입니다.

슬쩍 고개를 접더니 유유히 몸을 풀잎 사이로 숨깁니다.

스님도 모른채 하고 지나갑니다.  그냥 그대로 고요합니다.

우리들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때로는 모른척 하는것도 참 좋을듯 합니다.

녀석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자신의 여유있는 몸짓에 스스로 우쭐하지나 않았는지 아니면 저 스님

대개 멍청하네 하지나 않았을까요 서로는 서로를 보았지만 서로를 못 보았을거라고...

우리의 세상살이가 어쩌면 착각의 연속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갑니다.

우리의 세상살이가 각자의 업식 업이라는 연출자에 의해 연출 되어지는 연극일지도 모든다고

말입니다.  

연출자로의 반조가 없는 알아차림 없이 연출 되어지는 꿈 같은 연극을 자신의 온전한 삶으로

생각 하지나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알아차림의 애씀으로 꿈의 연극을 벗어나 보는것 우리의 진정한 삶의 의미일지도 모릅니다.

자신의 업력으로 부터 졸업하는 삶 이는 부처님께 졸업장을 받는 참 졸업이겠다 싶습니다.

이렇게 점심 공양후 포행을 나서면 스님의 텅빈 이야기 주머니가 하나 가득 채워지곤 합니다.

깨어 있음 알아차림의 시작은 순간 순간 생각의 공백이라 하면 어떨까요

한 걸음 더 나아간다면 알아차림 깨어있음을 아는 마음으로의 반조를 꾀하는 것이지요

이렇게 알아차림을 끈질기게 붙들고 간다면 우리들의 생사심 우리들의 업력으로 부터 빛나는

졸업장을 타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가파른 봉황산이지만 깨어있음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힘들다는 생각도 그렇치 않다는 생각도 없는

양변이 없는 생각의 공백으로 이어집니다  물론 완벽하지는 않지요

스님이 올랐는지 봉우리가 저에게 왔는지 모르게 이미 함께 합니다.

산 정상을 올랐다는 한 생각을 내는 순간 저의 머리에 어떤 의식일까요 꿀밤을 한대 놓습니다.

높고 낮음의 양변이 본래 없음을 일깨워주는 맛있는 꿀밤입니다. 

봉황산의 정상이지만 스님의 머리보다 아래이니까요 봉우리에 있는 소나무가 내려다 보면서

또 한번 스님을 일깨워줍니다.

 

사실 높고 낮음 오고 감의 모든 양변은 나 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생기는 허물이지 싶습니다.

그런 연유로 부처님께서 가장 우선으로 파해야 하는 것으로 유신견 즉 내가 있다고 믿는 잘못된

견해를 지적 하셨습니다. 우리의 성품이 공성이기에 있다 없다는 양변을 넘어서는 것이지요

그러니 봉우리와 스님이 허공과 함께 할 뿐이요   지구와 스님이 허공중에 함께 할 뿐이지요

스님의 처소를 떠나온 지금 처소의 주인은 그 누구도 아닌 허공입니다.

물론 스님이 처소에 머물때도 처소의 주인은 허공이라 함이 옳은 듯 합니다.

우리의 성품이 공성이기 때문이죠 우리들 각각의 성품은 관계성을 넘어선 허공과의 특별한 친구

이니까요  포행을 잠시 멈추는 봉우리에서 저편으로 보이는 선달산 왼편 품 안에 토담집을 짓곤

합니다. 우리들 어머니께서 당신의 오른팔로 자녀들을 품으로 살짝 안은 모습입니다.

스님은 그곳에 토굴을 한 채씩 짓지만 화를 내거나 하는 법이 없습니다.

토담집을 허락해 심심함을 면할까 하는 눈치인듯 합니다.

그렇게 덕스러울수가 없는 우리의 어머니 같은 선달산도 화내는 마음과 탐내는 마음과는 이별을

한듯합니다.    스님도 이제는 이러한 망상으로부터 졸업을 하려 합니다.

 

무량수전의 기도 소임을 맡은 연으로 재사의식을 많이 하게 됩니다.

재사 의식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깨달음이 보장되는 극락정토 학교로의 입학 의식이라 할수 ...

재사 하면 영가전에 떡 올리고 과일 올려 절을하는 모습들을 쉽게 떠올리게 됩니다.

사실 이러한 공양물을 올리는것은 스님과 더불어 우리 모두가 영가님을 대신해 공덕을 지어주는

그 이상은 아닌듯 합니다.

재사 의식에서 절실한것이 스님 보다도 영가와 가장 친숙했던 가족들의 염불기도라 생각됩니다.

가족들이 일심으로 하는 나무아미타불은 영가님을 극락세계로 인도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육신의 옷을 벗은 영가이지만 나 라는 생각으로 인해 나의 가족 나의 집 이렇게 강한 집착애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 연유로 처음 위패를 모시고 올때 영가에게 무상계와 영가전에를

일러주고 극락세계 상품상생하기를 축원합니다.

재를 지내는 동안 스님 스스로도 공성을 체험할 수 있는곳까지 공관을 통해 영가화 함께함으로써

영가님이 집착으로부터 벗어나 두려워 하지않고 극락정토로 향하는 빛을 택하라고 일러줍니다.

일단 극락정토 학교에 입학만 하면 졸업은 아미타부처님께서 보장을 하시니까요

그곳은 깨달음으로의 여정에서 잠깐 머무는 정류장과도 같다 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이 피안의 세계로 가는 큰 강을 건널때 자력으로만 건너기가 그리 쉽지가 않습니다.

거센 물결에 떠밀리기도 하고 지쳐서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기도 하고 업력이 너무나 무거운터라

헤엄치기 조차도 버거울수가 있습니다.

그러한지라 아미타 부처님의 배를타게 해서 피안의 세계로 건너게 하는 것이지요

개인의 그 업력이 무량수전 왼편에 있는 부석 바위와 같이 무거울지라도 소백산 비로봉과 같이

크고 무거울지라도 그 업력이 수미산과 같다 할지라도 아미타 부처님의 원력의 배는 아무런 무게감

도 느끼지 않을 정도로 무한하다고 합니다.

슬퍼하는것은 영가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습니다.

영가전에 커피며 공양물을 올리는것 보다는 아미타 부처님의 명호를 염하는 것이 월등합니다.

공기도 가벼워야 위로 향하는데 자꾸만 드시게 하면 배불러 못 갑니다.

육신의 옷을 벗는 시기는 영가에게 생사심을 영원히 줄업할 수 있는 엄청나게 중요한 시기임을

우리 모두가 기억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지난해 8월 쯤인가요 스님과 인연 지어진 친구를 소개 한다는것이 이리도 길어졌습니다.

인도네시아에서 아버지와 이별을 하고 아버지를 극락학교에 입학 시켜드리고자 부석사로 원서를

가지고 온 원규 친구입니다 아버지의 성은 구가입니다.

원규의 고모님과 스님과의 앞선 인연으로 이렇게 좋은 친구를 만나게 되었답니다.

초등학고 6학년입니다. 엄마와 함께 한국으로 와서 송파구에 있는 아주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이제는 바로 옆 아주 중학교에 입학했답니다.

재를 올리는 동안 정이 들었서일까요 아님 스님에게서 아버지의 한 부분을 느껴서 일까요

스님을 자신의 친구했음 좋겠다는 엄마의 말입니다.

의외로 처음 대하는 차 인데도 후후 불어가면서 국화차를 잘 먹습니다.

좋아하는 인연을 넘어서 즐김으로 성숙되어 버렸답니다.  서울로 국화차와 녹차를 보내봅니다.

스님 보고 싶어요 편지속 원규의 마음을 펼쳐보입니다. 엄마와 원규 둘이어서 그럴까

한편으로는 조심 스럽지요 녀석의 속내를 따라잡기에는 자신이 서질 않습니다.

엄마의 친구가 되었음 하는것일까 순간 스치는 스님 혼자의 생각입니다.

아버지와 세상과의 마지막 연을 직접 보았다는 고모의 말입니다.

가슴 깊이 자리한 그 기억들이 때때로 일어날때 흔들리지 않는 부동심을 심어줌이 스님이 그에게

할 수 있는 역할입니다.

 

언젠가 제주도 수학 여행을 갔다 사온 선물이라면서 네잎 크로버 안에 하루방이 들어 있는 예쁜

핸드폰 고리며 선인장 엿 감귤 쵸콜릿을 가지고 서울에서 내려오는 정성입니다

설날 이틀전엔 스님 처소에서 하루를 묵게 되었답니다.

예쁜 아이스크림 케익을 손에 들고 왔었지요

태어남과 돌아감에 대해 몇마디 옮기고는 잠을 청했습니다.

자리에 들어 법신불의 힘을 빌어 스님과 더불어 처소 이곳 저곳을 두루 밝고 맑은 에너지로 충만

하게 해 봅니다. 물론 스님의 방법이긴 하지만요 녀석의 편안한 밤이 될 수 있도록 말이지요

절에서 자는것 녀석에겐 처음 있는 일이거든요 진언을 몇독 하는사이 어느새 우는것 같기도 하고

실룩 실룩 스님의 귀를 깨웁니다.  원규 녀석 잠을 못 이룬듯합니다.

스님도 밤을 지새우다 원규야 너 지금까지 못 잤지 ... 스님이 묻기 전까지는 잘 잤다합니다.

2시 넘짓해서 법당으로 향할 준비를 하고 나서면서 스님의 부족함이 밀려오는 듯 해서 죄스러웠

던 기억입니다.  그냥 무심함이 그를 편하게 할 수 있음인데 말입니다.

이런게 부모의 마음일까 생각해봅니다.

새벽 기도후엔 아주 깊은 잠을 이루고 있는듯합니다. 순박한 아이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스님도 어릴쩍 저랬을까... 아침 공양을 하자고 깨워도 모를정도 입니다.

스님 몇시에요 응 6시 좀더 자렴 공양 챙겨 처소에서... 평소엔 아침 입맛이 없어 조금밖에 안먹

는대 절에만 오면 공양이 엄청 맛있다면서 몇 조각의 반찬을 남기고는 다 비우지 뭡니까

스님은 그 찬상을 더 깨끗하게 마무리해 봅니다.

스님의 한결같은  친구가 될것같은 좋은 예감입니다.

점심 공양을 하고는 공양간에서 가마솥에 짚혔던 장작불을 녀석과 함께 하고 있을때인가요

법당 화주 보살님께서 어쩜 저렇게 아버지와 아들같은 모습일까 하고 말을 건네 왔던 기억입니

다. 녀석의 초등학교 졸업 선물로 차선과 유리 숙우 찻잔을 준비 했답니다.

친구가 사온 베스킨라빈스 아이스클림케익 아끼고 아끼다 오늘에서야 꺼내봅니다.

어떤 밝고 맑은 학생이 와서는 아버지 어머니께서 동생과 자신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을 생각하면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겠다기에 케익 상자를 열었습니다. 어쩜 요렇게 예쁜 케익을 골랐는지

예쁜 리본하며 케익 둘레엔 빵으로 둘렀습니다. 녀석 미적 감각이 스님을 닮았나 봅니다.

 

눈이 많이 온 탓에 절 입구 주차장 까지 함께 걸었습니다.

원규 녀석의 삼촌이 마중을 나왔습니다.

차에 올라서는 안녕히 계세요 스님을 몇번이고 합니다.

그래 다음에 또 보자 하고 녀석을 보냈답니다.

스님의 친구 원규라는 녀석이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로 이 사바세계에 인연을 맺었고

또 다른 많은 이들이 천상세게에서 또 다른곳에서 수명이 다하고 복력이 다해 하늘과 땅과 물에

사는 많은 개체의 태중과 인연을 함께 합니다.

원규 친구와 스님은 다행히도 사람의 태중과 인연을 맺어 어머니의 몸에서 10달만에 태중 학교

생활을 마치고는 졸업장이자 이 세상으로의 입학 원서에 이름을 올렸답니다.

지금은 서로라는 관계로의 인연이지만 언젠가는 하나되는 졸업장에 불성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하리라 믿습니다.

우리들은 모유를 먹는것에서 졸업을 뒤로하고 곡류를 먹는 입학을 하고  유치원에서 부터 초등학

교 직장으로의 입학 결혼이라는 ... 수많은 입학과 졸업을 하지만 이들은 서로의 시작이어서 서로

에게 끝없는 양변을 마들어냅니다.  서로의 반복입니다.

생사심을 넘어서는 열반에 이르는 진정한 졸업을 위해선...

우리들의 눈으로는 성인들의 가르침을 보고

우리들의 귀로는 성인들의 가르침을 보아야 하지 싶습니다.

 

훌륭한 신부님과 목사님과 스님들께서 성인들의 가르침을 준비하고 문을 활짝 열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전원 장학생으로 ...

그러니 등록금 염려도 없습니다 그저 원서만 내면 되니까요

원서 접수비용이 조금은 든다구요 이정도의 정성은 필요하지 싶습니다.

그것은 우리들이 가벼운 걸음으로 부처님 곁으로 갈수있는 에너지의 역활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부처님 가르침의 장으로 들이는 발길이  소중하고도 큰 인연으로 아름다운

인연으로 만들어 줄수 있기때문입니다.

자 이제 이렇게 부처님의 가르침에 귀의하는 입학식을 마쳤습니다.

우리 불자님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의 문으로 들어 오셔서 그 뜻을 취하고 실천하면 됩니다.

그 8만 4천의 가르침을 요약하면 37조도품이라 합니다

또 이를 요약하면 8정도 이라 하구요 또 다시 요약하면 계,정,혜 3학으로 요약된다 합니다

이 계, 정, 혜 3학이 알아차림 또는 화두를 하는것에 있다 이겁니다.

그러니 얼마나 쉽습니까 복잡할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지요 

무량수전 부처님의 향기는 24시간 동안 누구와도 함께 합니다.

스님도 불자님들과 신도라는 입장에선 동일합니다.

그러니 함께 가면 힘들께 뭐 있겠습니까

신도라는 신자가 믿을신(信) 아닙니까 사람인변에 말씀언 이지요

사람의 말을 믿고 실천하는 의미 이지요 그럼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사람으로 화현 하신 석가모니 부처님 아닙니까 그런 입장에서 삭발하고 먹물옷 입은 스님도

석가모니 부처님을 스승으로 모시는 제자이자 그분의 말씀을 믿고 실천하려 애쓰는 신도이지요

선달산도 참 졸업을 한듯하고 허공도 온전한 졸업을 햔듯합니다.

부석사의 신도회 불자님들도 탐심으로부터 진심으로부터 거의 졸업을 한듯합니다

이 탐심과 진심이 어리석음으로 부터 출발하니 어리석은 마음인 치심만 지우면 될듯 한대 만만치가

않습니다.

생사심(生死心)으로 부터의 졸업을 위해 업력으로 부터의 졸업을 위해

몸으로 마음으로의 작은 고통들을 참고 견디며서 사소한 작은 행복들을 놓을 수 있어야겠습니다.

자 우리 모두가 신도라는 보다 낮은 자세로 알아차림의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인천의 스승이신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실때 알아차림이란 말씀을 마지막으로

하셨다 합니다.

 

                              무   하                    합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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